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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길 1depth:서울시장 오세훈

  • 1961년 - 삼양동 판자촌 유년 시절 오세훈 시장과 가족 사진
    삼양동 판자촌에서 꿈을 키운 소년

    1961년 1월 4일, 서울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단칸방을 전전하다가 삼양동 판자촌에 정착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공동 화장실과
    공동 우물을 이용하며 호롱불 밑에서 공부해야 했다.

    자녀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더 열심히
    공부한 결과,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6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초등학교를 네 번이나 옮겨 다니며 “셋집이라도 마음 놓고 한 곳에서 오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유년 시절의 경험은 훗날
    장기전세주택제도 ‘시프트’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삼양동 판자촌에서 꿈을 키운 소년

    1961년 1월 4일, 서울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단칸방을 전전하다가 삼양동
    판자촌에 정착해 유년시절을 보냈다.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공동 화장실과 공동 우물을
    이용하며 호롱불 밑에서 공부해야 했다.

    자녀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더 열심히 공부한 결과,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6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초등학교를 네 번이나 옮겨 다니며 “셋집이라도 마음 놓고
    한 곳에서 오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유년 시절의 경험은 훗날 장기전세주택제도
    ‘시프트’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 1990년 - 환경변호사로 활동중인 오세훈 시장 사진
    일조권을 환경권으로 인정받은
    최초 변호사

    1990년대는 ‘일조권’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시기였다.

    당시 부평의 한 아파트에서 일조권 문제로 대기업과 소송을 준비한다고
    찾아왔고, 승소를 장담할 수 없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싸움에 지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에서 대기업의 배상금 지급 판결 받아
    승소했고, 이 사건은 대한민국 최초로 헌법상 일조권을 환경권으로
    인정받은 판례가 됐다. 이후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장과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을 지내며 환경변호사로 맹활약했다.

    일조권을 환경권으로 인정받은
    최초 변호사

    1990년대는 ‘일조권’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시기였다.

    당시 부평의 한 아파트에서 일조권 문제로 대기업과 소송을
    준비한다고 찾아왔고, 승소를 장담할 수 없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싸움에 지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에서 대기업의 배상금 지급 판결 받아 승소했고,
    이 사건은 대한민국 최초로 헌법상 일조권을 환경권으로
    인정받은 판례가 됐다. 이후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장과
    법률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을 지내며
    환경변호사로 맹활약했다.

  • 2000년 - 국회에서 발언중인 오세훈 시장 사진
    정치 개혁의 상징,
    오세훈이 만든 ‘오세훈법’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문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한나라당 간사를 맡아 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관계법 개정에 산파 역할을 했다.

    2004년 1월,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당의 이미지 쇄신에도
    목소리를 높였고, 이로 인해 정치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정치 개혁의 상징,
    오세훈이 만든 ‘오세훈법’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문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한나라당 간사를 맡아 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관계법
    개정에 산파 역할을 했다.

    2004년 1월, 17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당의
    이미지 쇄신에도 목소리를 높였고, 이로 인해 정치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 2006년 - 박수치는 사람들과 손 흔드는 오세훈 시장 사진
    창의와 디자인의 프레임을 시정에 도입한
    민선 최연소 서울시장

    2006년 45세의 나이로 제33대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이후 2010년 제34대 서울시장 재임에 성공했다.

    창의시정과 여행(女幸)프로젝트를 도입해 ‘UN공공행정상’을 2회 연속
    수상했고, ‘디자인서울’ 정책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높여 서울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되기도 했다.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정책은 UN이 지정한 도시주거정책의 모범사례로
    세계에 알려졌다. 재임기간 동안 서울의 도시경쟁력 지수는
    20위권에서 10위권으로, 광역자치단체 청렴도는 15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창의와 디자인의 프레임을 시정에 도입한
    민선 최연소 서울시장

    2006년 45세의 나이로 제33대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이후 2010년 제34대 서울시장 재임에 성공했다.

    창의시정과 여행(女幸)프로젝트를 도입해 ‘UN공공행정상’을
    2회 연속 수상했고, ‘디자인서울’ 정책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높여 서울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되기도 했다.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정책은 UN이 지정한 도시주거정책의
    모범사례로 세계에 알려졌다. 재임기간 동안 서울의
    도시경쟁력 지수는 20위권에서 10위권으로,
    광역자치단체 청렴도는 15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 2013년 - 페루에서 아이들과 웃고있는 오세훈 시장 사진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2013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중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와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장기 자문단 시정자문관으로
    활동했다. 리마시청과 키갈리시청에서 환경, 도시행정, 법률 등의
    분야에 대해 자문하며 서울의 선진 행정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에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성장 동력을
    차분히 고민하며 공부하는 시간을 보냈고, 현장을 발로 뛰며 진심으로
    자문활동을 한 덕분에 알찬 정보를 발굴할 수 있었다.

    길을 떠나 다시 배우다

    2013년 1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중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와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장기
    자문단 시정자문관으로 활동했다.
    리마시청과 키갈리시청에서 환경, 도시행정, 법률 등의
    분야에 대해 자문하며 서울의 선진 행정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에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성장 동력을 차분히 고민하며 공부하는 시간을 보냈고,
    현장을 발로 뛰며 진심으로 자문활동을 한 덕분에 알찬 정보를
    발굴할 수 있었다.

  • 2021년 - 시장 당선 후 첫 출근에서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는 오세훈 시장 사진
    첫날부터 능숙하게, 서울부터 공정·상생

    공정과 상생의 기치를 내걸고 50%가 넘는 지지율로 제38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다시 뛰는 서울을 위한 향후 10년의 방향을 ‘서울비전 2030’을 통해 제시하고,
    서울을 공정한 환경과 기회를 보장하는 ‘상생도시’, 세계 5위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선도도시’,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는 ‘안심도시’,
    멋과 감성으로 감동을 주고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미래감성도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첫날부터 능숙하게, 서울부터 공정·상생

    공정과 상생의 기치를 내걸고 50%가 넘는 지지율로
    제38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다시 뛰는 서울을 위한 향후 10년의 방향을 ‘서울비전 2030’을
    통해 제시하고, 서울을 공정한 환경과 기회를 보장하는
    ‘상생도시’, 세계 5위의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선도도시’,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는 ‘안심도시’,
    멋과 감성으로 감동을 주고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미래감성도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